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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 (2017) – 진실, 광주, 평범한 영웅

by eodeltm 2025. 5. 8.

택시운전사 (2017)

간략한 줄거리

『택시운전사』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광주로 데려간 실제 서울 택시기사 김사복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영화는 서울의 택시운전사 김만섭(송강호 분)이 우연히 고액의 외국인 승객을 태우고 광주로 향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처음엔 돈이 목적이었던 그는 참상을 목격한 뒤,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데 일조하고 광주 시민을 지키려는 사명감에 눈뜬다.

진실을 기록하다, 언론의 힘

『택시운전사』의 가장 중요한 서사축은 "진실을 누가 기록하고 전하는가"에 대한 문제다.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는 단순한 외국 특파원이 아니다. 그는 언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들어가고, 자신의 카메라에 그 누구도 외면한 현장을 담는다. 광주에서 벌어진 국가 폭력의 현장은 그의 필름을 통해 전 세계로 알려졌고, 이는 국내외 여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와 함께한 김만섭은 처음엔 이 모든 것이 남의 일이었다. 외국인을 태워 돈을 벌려던 그가 마주한 것은 단순한 시위가 아닌 학살의 현장이었고, 그 참상 앞에서 그는 ‘언론’의 의미를 처음 체감한다.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는 힌츠페터의 옆에서 김만섭은 경악하고, 분노하고,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감정을 되찾아간다. 영화는 이 과정을 매우 사실감 있게 그린다. 뉴스가 통제되고, 시민이 시민을 감시하던 그 시대, 외신만이 진실을 외칠 수 있었던 아이러니는 슬픔 그 자체다. 힌츠페터가 목숨을 걸고 필름을 지켜내는 장면은 영화 전체의 클라이맥스이자, 진실의 무게와 가치를 되새기게 만든다. 결국 『택시운전사』는 묻는다. 지금도 우리는 진실을 볼 수 있는가? 혹은 진실을 보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가? 언론의 힘은 단지 기록이 아니라, 세상을 움직이는 첫 번째 발걸음이다.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

『택시운전사』는 광주의 비극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면서도, 강한 충격을 전달한다. 영화가 광주에 도착하는 시점부터 관객은 점점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게 된다. 사람들은 말이 없고, 군인들은 눈빛이 날카로우며, 시내는 정적에 휩싸인다. 이 정적은 곧 피와 총성으로 바뀌며, 무장하지 않은 시민이 군인에게 잔인하게 짓밟히는 현실로 변한다. 이 영화의 진정한 위력은, 그 공포를 ‘사실적으로’가 아닌 ‘감정적으로’ 체감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우리는 김만섭의 시선을 통해 광주를 본다. 생애 처음 보는 학살, 마을 전체를 덮는 절망, 그리고 그 안에서도 서로를 돕는 시민들의 온기를 체험한다. 아이를 지키는 어머니, 시민군이 되어버린 학생들, 집을 내어주는 이웃들. 영화는 이 작은 장면들을 통해 광주가 얼마나 숭고했는지를 증명한다. 또한 영화는 당시 광주 시민의 분노와 자존심을 절대 희화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절망 속에서도 존엄을 지키고 연대를 멈추지 않았던 이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든다. 이는 그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강력한 영화적 메시지다. 『택시운전사』는 광주를 피해자의 도시로만 그리지 않는다. 광주는 저항의 도시였고, 연대의 도시였으며, 기억되어야 할 이름이다. 이 영화는 그 이름 앞에 진심을 다해 고개 숙인다.

평범한 사람의 비범한 용기

『택시운전사』가 감동적인 이유는, 이 거대한 역사 속 이야기가 ‘평범한 개인’의 선택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김만섭은 특별한 영웅이 아니다. 그는 홀로 딸을 키우는 생계형 가장이고, 자신의 일에만 충실한 보통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광주에서 본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비극이었고, 그 순간 그는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는 도망가지 않고 힌츠페터를 끝까지 도와 진실의 필름을 세상 밖으로 반출시키고, 광주 시민들을 도와 헌신하며, 위험 속에서도 정의와 인간다움을 택한다. 이 과정은 영웅적 선택이 아니라, 아주 작고 인간적인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감동적이다. 영화는 이를 억지 감정으로 조작하지 않는다. 송강호의 연기는 진짜 ‘보통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는 겁도 많고, 욕도 하고, 도망가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순간에 그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다. 이 소박한 용기가야말로 『택시운전사』가 전하고자 하는 가장 큰 메시지다. 영웅은 어디선가 오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거창한 사람이 아니라, 작지만 옳은 선택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용기로 이루어진다. 『택시운전사』는 그 사실을 광주라는 비극 위에 정확하게 새겨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