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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 (2017) – 누명, 정의, 끝까지 싸운 사람들

by eodeltm 2025. 5. 9.

재심 (2017)

간략한 줄거리

『재심』은 2000년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에서 택시기사가 피살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실화 기반 영화다. 10대 소년이 살인범으로 몰려 억울하게 복역하고, 이후 10년 만에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재심을 청구하는 과정을 다룬다. 가난한 청년과 한때 돈만 좇던 변호사가 만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거대한 법의 벽에 맞서는 이야기로, 사회 시스템의 허점과 인간의 양심을 진지하게 조명한다.

누명이 만든 10년, 무너진 삶

『재심』은 억울한 누명을 쓴 한 청년의 비극으로 시작된다. 2000년대 초, 전북 익산에서 발생한 택시기사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15세 소년 현우는 증거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체포되어 강압 수사 끝에 자백하고, 실형을 선고받는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 형사사법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파헤친다. 현우는 사회로부터 낙인찍힌 채 10년을 복역하며 삶의 방향을 완전히 잃는다. 이 시점에서 관객은 피해자의 시선이 아닌 ‘가해자로 오해받은 자’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게 되며, 영화는 이를 통해 깊은 공감과 분노를 동시에 이끌어낸다. 경찰의 강압수사, 변호인의 무기력, 사법부의 기계적인 판단 등이 누명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한 소년은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송두리째 빼앗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재심』이 단지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해자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고, 억울함을 겪은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야 했는지, 그리고 그 고통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출소 이후에도 사회는 현우를 범죄자로 본다. 일자리도, 인간관계도, 삶 자체가 온통 의심과 차별로 가득하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과연 우리 사회는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그 실수가 만든 피해자에게 어떤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재심』의 서사는 단순한 무죄 입증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기 위한 ‘정의의 회복’이다.

뒤집는 정의, 싸움은 지금부터

『재심』에서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변호사 준영(정우 분)이다. 한때 정의보다 돈을 좇았던 그는, 우연한 계기로 현우의 사건을 접하면서 자신이 외면해왔던 ‘진짜 정의’와 마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동정도, 의무감도 아닌, 일종의 사업 기회처럼 접근했던 사건이었지만, 현우의 진심과 고통을 마주하며 그는 점차 달라진다. 이 영화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이다. 정의는 한순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용기를 내어 움직이고, 또 누군가가 함께 손을 잡아줘야 완성된다는 것. 준영은 거대한 검찰과 경찰 조직, 그리고 재판 시스템 속에서 반복적으로 좌절하지만, 결국 끈질긴 조사와 증거 확보, 증언 설득을 통해 사건을 재심의 장으로 끌어올린다. 드라마틱한 전개보다는 사실적인 전개로, 재심 청구의 현실적 난관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시청자로 하여금 법적 정의가 얼마나 취약하고 복잡한지를 느끼게 만든다. 불리한 판결, 무기력한 제도, 공권력의 방어 본능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법 안에서 정의’를 찾아가는 모습은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이 정의가 단지 현우 한 명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다. 만약 이 재심이 실패한다면, 비슷한 상황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도 다시는 목소리를 낼 수 없다. 따라서 준영과 현우의 싸움은 개인의 복수가 아닌, 사회 전체를 위한 싸움으로 확대된다. 『재심』은 정의가 이미 갖춰진 상태가 아니라, 매번 싸워서 얻어야 하는 가치임을 분명하게 전한다. 이 영화는 한 변호사의 각성과 한 청년의 희망 회복을 통해, 정의는 살아있어야 한다고 외친다.

끝까지 간다, 진실을 향한 연대

『재심』의 후반부는 진실을 향한 치열한 싸움이자, 연대의 힘을 보여주는 순간들로 가득하다. 이 싸움은 법정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법정 바깥에서 더 치열하게 전개된다. 경찰과 검찰의 조직적인 은폐, 당시 수사 관계자의 증언 거부, 그리고 미디어의 침묵까지. 모든 것이 그들의 싸움을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힘’을 보여준다. 고등학생이던 시절 진실을 말하지 못했던 증인은 시간이 흘러 양심을 선택하고, 마을 주민들 중 몇몇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변호사 준영과 현우, 그리고 주변 인물들은 서로의 믿음을 통해 조금씩 전진하고, 마침내 재심의 판결을 이끌어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건, 단순히 승소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우는 무죄를 선고받지만, 그간 잃어버린 시간은 결코 복구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실은 관객의 마음에 무거운 울림을 남긴다. 정의는 때로 너무 늦게 찾아오고, 그 지연은 치명적인 상처로 남는다. 하지만 영화는 그럼에도 진실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재심』은 우리가 쉽게 말하는 정의와 진실이 얼마나 어려운 싸움 끝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단지 억울한 사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사회 속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진실은 누군가가 나서야 드러난다. 『재심』은 바로 그 ‘나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끝까지 싸운 자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