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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2016) – 초등생, 외로움, 우정의 균열

by eodeltm 2025. 5. 15.

우리들 (2016)

간략한 줄거리

윤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 『우리들』은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 ‘선’과 전학 온 친구 ‘지아’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심리와 우정, 그리고 관계의 상처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방학 동안 단짝이 된 두 친구는 새 학기가 시작되자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멀어지기 시작한다. 어린이들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작지만 깊은 갈등은 오히려 어른들의 관계보다 더 날카롭고 진실하다.

교실 안과 밖, 초등학교의 진짜 풍경

『우리들』은 교실이라는 가장 일상적인 공간을 무대로 펼쳐지는 아주 사적인 감정의 흐름을 정교하게 포착한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어른들이 보기엔 작고 사소해 보일 수 있는 갈등이,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얼마나 큰 파장으로 다가오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들의 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따돌림, 서열, 친밀함의 경계는 단순한 놀이의 연장선이 아니라, 사회라는 축소판 그 자체다.

주인공 선은 조용하고 소심한 성격으로, 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외톨이처럼 지낸다. 그러던 중 방학을 맞아 전학생 지아와 우연히 가까워지고, 두 아이는 함께 공을 차고, 비밀 이야기를 나누며 진심 어린 우정을 쌓아간다. 하지만 새 학기가 시작되자 지아는 분위기 반장의 눈치를 보며 선을 멀리하기 시작하고, 선은 갑작스러운 배신감에 큰 혼란을 느낀다.

교실이라는 공간은 아이들에게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사회이자, 감정이 가장 치열하게 교차하는 곳이다. 영화는 이 교실 안 풍경을 감정적으로 과장하지 않고, 카메라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관객에게는 묵직한 울림을 안긴다. 특히 복도에서의 외면, 점심시간의 자리 배치, 함께하던 놀이에서의 배제 등은 말 한 마디 없이도 관계의 변화와 감정의 골을 드러낸다.

『우리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공간—학교—안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심리와 감정의 흐름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어른들이 쉽게 넘길 수 있는 아이들의 갈등이야말로, 인간관계의 시작점이자 삶의 축소판임을 잊지 말라고 말하는 영화다.

외로움이라는 그림자, 말 못 할 감정들

『우리들』에서 가장 인상 깊은 감정은 ‘외로움’이다. 선은 누구에게도 자신의 진짜 감정을 털어놓지 못하는 내성적인 아이지만, 그 안에는 친구를 만들고 싶은 간절함과 소외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 있다. 영화는 선의 고요한 표정을 통해 외로움의 다양한 결을 보여준다.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선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을 읽게 된다.

반면, 지아는 겉으로 보기엔 활발하고 강한 성격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 자신의 외로움을 숨기고 있는 아이다. 부모의 이혼과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응, 친구를 사귀기 위한 애쓰는 모습은 선보다 더 능동적이지만, 결국 같은 외로움의 뿌리를 공유한다. 이 두 아이는 닮은 듯 다르고, 그래서 서로에게 더욱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어른들은 종종 아이들이 밝고 명랑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 이면에 감춰진 정서를 보여준다. 말하지 못한 감정, 표현하지 못한 진심, 받아들여지지 못한 상처들이 얼마나 무겁게 아이들의 마음을 짓누르는지를 담담히 묘사한다. 이 영화는 그런 감정을 과장 없이, 감정선의 결만으로 풀어내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녔다.

외로움은 단순히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함께 있으면서도 느끼는 고립감, 가장 가까운 이로부터의 배제, 나만 뒤처지는 듯한 느낌—이 모든 것이 선과 지아의 표정, 행동, 침묵 속에 녹아 있다. 『우리들』은 이 외로움을 드러냄으로써, 우리 모두가 한때 겪었던 혹은 지금도 겪고 있는 감정의 뿌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우정의 균열과 회복, 관계의 시작과 끝

『우리들』의 백미는 우정의 미묘한 균열과 그 균열을 바라보는 방식에 있다. 선과 지아는 분명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그들은 비밀을 나눴고, 함께 웃었으며, 진심으로 친구가 되고자 했다. 하지만 새로운 학기, 새로운 친구들, 보이지 않는 사회적 서열 속에서 지아는 선에게서 등을 돌리고 만다.

이 영화가 탁월한 지점은, 관계의 단절을 선과 지아 어느 쪽의 잘못으로 단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누군가는 상처를 입고, 누군가는 외면을 택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우정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또 그 흔들림 속에서 얼마나 깊은 상처가 남는지를 영화는 아주 섬세하게 다룬다.

그러나 『우리들』은 관계의 회복에 대해서도 말한다. 선은 지아의 상처를 이해하게 되며, 자신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자각한다. 결국 영화는 단절보다는 회복의 가능성을, 배신보다는 이해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의 세계는 가혹하지만, 동시에 유연하다. 진심은 시간이 걸려도 전해지고, 우정은 다시 이어질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두 아이가 교실에서 눈빛을 마주치는 순간은 대사가 없어도 깊은 의미를 전한다. 그 짧은 교차 속에 우리는 관계의 회복과 감정의 용서를 읽을 수 있다. 『우리들』은 우정이라는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고도 귀한지를 알려주는, 따뜻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