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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캔 스피크 (2017) – 위안부, 영어, 존엄의 외침

by eodeltm 2025. 5. 10.

아이 캔 스피크 (2017)

간략한 줄거리

『아이 캔 스피크』는 2017년 개봉한 대한민국의 사회 드라마 영화로, 민원왕으로 불리는 까칠한 할머니 나옥분(나문희)과 원칙주의 9급 공무원 박민재(이제훈)가 영어 수업을 매개로 만나 서로의 상처와 진심을 알아가며, 숨겨졌던 위안부 피해자의 용기 있는 증언까지 이르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는 유쾌한 분위기 속에 묵직한 역사의 진실을 녹여내며,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과거를 마주하다, 위안부의 진실

『아이 캔 스피크』는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드러나는 나옥분의 과거를 통해 관객을 정적 속으로 이끈다. 평소 민원을 자주 넣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다소 까칠한 인상으로 알려진 그녀는 사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으며, 오랜 시간 동안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고통을 마침내 세상에 알리고자 결심한다. 이 설정은 단순한 서사 장치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외면해온 역사적 진실을 감정의 파동 속에 녹여낸 대목이다. 나옥분은 수십 년간 자신을 괴롭혀온 기억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지만, 어느 날 미국 의회에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녀는 이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영어를 배우고, 그 과정에서 박민재와의 관계는 단순한 교사와 수강생을 넘어서 인생의 동반자로 확장된다. 영화는 이 흐름 속에서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결심이며, 동시에 얼마나 치유적인지를 보여준다. 영화가 다루는 위안부 문제는 무겁고 민감한 주제지만, 『아이 캔 스피크』는 이를 억지 감정에 기대기보다는 현실적인 캐릭터와 감정선을 통해 담담하게 전달한다. 나옥분의 고백은 극적이지만 과장되지 않았고, 그녀가 입을 여는 순간은 관객에게 잊을 수 없는 울림으로 다가온다. 위안부라는 역사적 아픔을 현재의 시선으로 연결하는 이 영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증언이자 기억의 장치다. 『아이 캔 스피크』는 말한다. 아무리 오래된 상처라도, 그것을 말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치유가 시작된다고. 그리고 누군가는 반드시 들어야 한다고.

영어는 도구였다, 말하고 싶은 진심

영화의 전개 초반부는 가볍고 유쾌하다. 원칙주의자 박민재는 까다로운 민원인 나옥분을 피하려 하지만, 결국 영어 과외 교사로 끌려들어간다. 두 사람의 티키타카는 관객에게 웃음을 주며, ‘세대 차이’를 중심으로 한 익숙한 코미디의 결을 따라간다. 그러나 영화는 점차, ‘영어’라는 학습의 목적이 단순한 교양이나 취미가 아닌, 옥분의 절실한 진심에서 비롯됐음을 드러낸다. 영어를 배우려는 옥분의 목적은 명확하다. “내 이야기를, 내 목소리로 말하고 싶어서.” 영어는 그저 수단일 뿐, 진짜 하고 싶은 건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어온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다. 그리고 민재는 이 사실을 알게 되며 그녀의 여정에 함께 하게 된다. 영화는 이 순간부터 코미디에서 드라마로 전환되며, 영어라는 도구를 통해 두 사람 모두가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특히 민재의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처음에는 귀찮은 민원인 정도로 옥분을 대하던 그는, 그녀의 사연을 알게 된 이후 진심 어린 존중을 보이게 된다. 영어 수업은 어느새 인간적 유대의 시간이 되었고, 민재 역시 옥분을 통해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책임과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아이 캔 스피크』는 언어란 그 자체로도 힘이 있지만, 그것을 통해 전달되는 ‘진심’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나옥분이 영어로 외치는 마지막 증언은 단지 한 문장의 말이 아니라, 한 세대의 고통과 용기를 담은 외침이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의 언어다.

한 여인의 용기, 침묵에서 외침으로

『아이 캔 스피크』의 핵심 감동은 ‘말할 수 없던 것’을 마침내 ‘말하게 되는 순간’에 있다. 위안부 피해자로서의 과거를 안고 살아온 나옥분은 오랜 세월 그 상처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침묵은 치유가 아니었고, 오히려 마음 깊은 곳의 상처로 남아 그녀를 괴롭혀왔다. 그런 그녀가 마침내 마이크 앞에 서서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장면은, 그 어떤 장면보다도 강력한 감정을 전한다. 그 장면에서 그녀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지 않는다. 어눌하지만 정확히, 천천히 그러나 단단히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 말들은 누구보다 진실했고, 듣는 이들뿐 아니라 스크린 밖 관객들의 가슴까지 울린다. 이것이 바로 『아이 캔 스피크』가 주는 힘이다. 영화는 말한다. "누구도 대변할 수 없는 고통이 있으며, 그 고통은 스스로의 언어로 말할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 나문희 배우의 연기는 이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연기를 넘어 실제 그 시대를 살아온 여성의 육성을 담아낸 듯한 진정성은 영화 전체를 지탱하는 중심축이 된다. 그리고 이제훈은 그런 나문희를 지켜보는 시선으로, 관객과 같은 공감의 입장을 대변하며 감정의 다리를 놓아준다. 『아이 캔 스피크』는 단지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존엄을 회복해가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침묵을 깨고 외치는 목소리는, 단지 옥분의 것이 아니라 모든 여성, 모든 고통받은 사람들의 것이 된다. 그리고 그 용기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 모두에게 ‘듣는 태도’의 중요성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