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작 소개
봉준호 감독은 2000년 『플란다스의 개』로 데뷔한 이후,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2013), 『옥자』(2017), 그리고 전 세계적인 찬사를 받은 『기생충』(2019)으로 세계 영화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살인의 추억』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미제사건을 서스펜스와 유머로 해석하며 영화적 언어의 깊이를 넓혔고, 『괴물』은 괴수영화와 가족드라마를 결합한 장르 파괴의 대표작이었습니다. 『설국열차』와 『옥자』는 글로벌 프로젝트로서, 봉준호가 한국을 넘어 세계 영화산업에 본격 진입한 계기를 마련했으며, 『기생충』은 2019년 칸 황금종려상과 2020년 아카데미 4관왕이라는 한국 영화사의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처럼 봉준호 감독은 각기 다른 장르, 스타일, 제작 규모의 작품을 통해 일관된 시선과 문제의식을 유지하며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해왔습니다.
장르를 해체하는 이야기꾼
봉준호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장르 해체자’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영화는 대부분 명확한 장르를 갖고 있지만, 전통적인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장르적 요소를 의도적으로 파괴하거나 비틀며 새로운 서사를 창조합니다. 『살인의 추억』은 형사물의 구조를 따르면서도 범인의 정체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이야기의 본질을 사회적 무력감과 시대 분위기에 둡니다. 『괴물』은 한국 최초의 본격 괴수 영화지만, 정작 괴물은 중간부터 거의 등장하지 않고 가족의 시선으로 사태를 풀어가며 슬픔과 유머, 공포와 풍자가 섞인 독특한 리듬을 보여줍니다. 『마더』는 스릴러의 형식을 따르지만 엄마라는 존재의 본능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며 캐릭터 중심의 심리극으로 완성됩니다. 이처럼 봉 감독은 하나의 장르를 택해 출발하지만 중반부부터 그 장르의 규칙을 깨고 뒤틀어 관객으로 하여금 익숙한 구도 속에서 낯선 감정을 경험하게 만듭니다. 그는 장르를 차용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반문하고 확장하는 작가입니다. 특히 『설국열차』에서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SF, 액션이라는 장르 틀 안에 계급 문제와 윤리적 질문을 녹여 넣으며, 블록버스터의 외형과 사회 드라마의 내면을 결합한 복합적 서사를 보여줍니다. 『기생충』 또한 블랙 코미디, 스릴러, 사회극의 경계를 넘나들며 장르가 인물과 현실의 도구로 기능할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그는 장르를 “유리 온실”이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지켜야 할 형식이 아니라, 그 안에서 실험하고 확장할 수 있는 온화한 틀이라는 뜻입니다. 봉준호의 영화는 이 유리 온실 안에서 언제나 자라나는 ‘다르게 말하기의 실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회에 대한 시선과 문제의식
봉준호 감독의 모든 영화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과 구조에 대한 분노가 깔려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화가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하길 주저하지 않으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라는 말을 ‘가장 현실적인 것이 가장 영화적이다’라는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기생충』은 가난한 가족과 부유한 가족의 대립을 그들의 일상과 공간, 감정을 통해 교차적으로 배치하며 ‘계급’이라는 단어 없이도 계급의 구조를 명확히 드러냅니다. 『괴물』은 정부의 무능, 미국의 무책임, 언론의 조작 등 다양한 사회 시스템의 허점을 풍자하며 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개인은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말합니다. 봉준호의 시선은 늘 약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에서도 피해자의 부모, 무능한 형사, 그리고 결국 범인을 잡지 못한 채 끝나버린 현실의 무기력까지, 모든 상황은 소수자의 무력감을 말없이 끌어안고 있습니다. 『마더』는 그 시선을 여성으로 확장합니다. 사회가 정의 내리지 못하는 ‘엄마’라는 존재의 복잡한 내면과 범죄를 둘러싼 모성과 윤리를 정면으로 다루며, 이분법적인 선악 구도를 해체합니다. 그는 특정 이념을 내세우기보다는, 사회 구조 속에서 작동하는 억압과 불균형을 이야기합니다. 관객이 그 구조를 바라보게 만드는 연출 방식, 무의식에 새겨지는 레이어 처리된 상징들이 봉준호 영화의 독창적인 미학을 만들어냅니다. 그의 영화는 절대 정답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객에게 질문을 남깁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나는 지금 이 구조 속에서 누구인가?” 이런 질문을 마주한 관객은, 봉준호라는 이름을 통해 더 넓은 현실과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세계가 주목한 감독, 봉준호의 위치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은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까지 총 4관왕을 차지하며 영화사에 길이 남을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전까지 외국어 영화는 ‘국제영화상’에 머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봉준호는 그 벽을 무너뜨리며 “오스카의 판도를 바꾼 감독”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는 단지 한국의 자랑이 아닌, 세계 영화계가 주목하는 가장 창의적인 작가 중 한 명으로 올라섰습니다. 이제 ‘봉준호 스타일’은 하나의 영화적 형식으로 인식되고, 그의 연출 기법과 서사 방식은 전 세계 영화학교에서 교재로 쓰일 만큼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넷플릭스와 협업한 『옥자』는 영화의 유통 구조를 바꾸는 데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기존 영화관 중심의 배급 방식에서 OTT와 극장의 공존 가능성을 보여주며 산업 구조 내에서의 실험에도 앞장섰습니다. 『설국열차』는 한국 감독이 헐리우드 대작을 연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그 후 한국 감독들의 세계 진출이 더욱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은, 세계적 규모의 프로젝트를 하면서도 항상 ‘한국적인 서사’, ‘봉준호다운 감성’을 잃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할리우드의 룰에 휘둘리지 않으며, 늘 자신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중심에 두고 영화를 만듭니다. 봉준호는 “언어의 장벽은 1인치의 자막일 뿐”이라 말했습니다. 그는 장르, 언어, 국가의 경계를 넘는 이야기꾼이며, ‘로컬’에서 시작해 ‘글로벌’로 확장된 21세기 영화감독의 전형을 가장 아름답게 실현한 인물입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그가 바라보는 다음 사회는 무엇일지. 전 세계가 기다리는 ‘봉준호의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