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략한 줄거리
『변호인』은 故 노무현 대통령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1981년 부림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세무 전문 변호사 송우석(송강호 분)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법을 다루던 인물이다. 그러나 단골 국밥집 아주머니의 아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문당하고 구속되자, 그는 외면 대신 변호를 결심한다. 양심을 지키는 일과 시대의 부조리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선택, 『변호인』은 진실을 지키기 위한 뜨거운 용기를 이야기한다.
양심의 각성, 송우석의 선택
『변호인』의 시작에서 송우석은 매우 현실적이고 속물적인 인물이다. 사법고시를 패스하지 못해 변호사가 되기 위해 세무사 자격을 따고, 부산에서 부동산·세금 전문 변호사로 성공을 이룬다. 돈이 인생의 중심이며, 정의나 사회 문제에 큰 관심은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세계는 단골 국밥집 아주머니의 아들 진우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 순간, 송우석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단골집 아들의 억울함을 외면하고 계속 안락한 삶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 목소리를 낼 것인가. 그리고 그는 후자를 택한다. 이 결정은 단순히 변호를 수락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을 직시한 결과다. 그는 이 사건을 통해 ‘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던진다. 송강호는 이 내면의 변화 과정을 탁월하게 표현한다. 처음엔 어색하고 두려워하던 송우석이 점점 단호해지고 뜨겁게 변해간다. 그의 연기는 단지 ‘사람이 바뀐다’는 서사를 넘어, 바뀌어야만 했던 시대의 요청을 담는다. 영화는 개인의 각성이 얼마나 사회를 바꿀 수 있는지를 송우석이라는 인물을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변호인』은 결국 말한다. 양심은 위대한 선택이 아니라, 외면하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그리고 그 외면하지 않는 한 사람이 모이면, 결국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국가 폭력의 민낯, 고문의 실체
『변호인』이 지닌 힘은, 고문이라는 단어를 단순히 언급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것이 가진 폭력성과 비인간성을 직접 마주하게 한다는 데 있다. 영화는 진우가 고문당하는 장면을 과도하게 자극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 여운과 현실감은 오히려 더 크고 무겁게 남는다. 경찰서 안에서 벌어진 폭력, 강요된 자백,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박탈당하는 과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극한의 분노와 슬픔을 느끼게 만든다. 고문은 단순히 개인을 부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체제가 정한 ‘진실’을 강제하는 수단이며, 저항을 짓밟고 침묵시키는 도구다. 영화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책을 읽고 토론을 했다는 이유로 잡혀간 대학생들이 간첩으로 몰리고, 고문을 통해 그 '극단적 프레임'을 완성한다. 이런 시스템 안에서는 죄가 만들어지고, 진실은 왜곡된다. 고문에 가담하는 이들도 단지 악당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들 역시 체제 안에서 길들여진 인물들이다. 이것이 영화가 가진 무서운 리얼리티다. 『변호인』은 누가 고문했느냐보다, 왜 그런 시스템이 작동했느냐에 더 집중하며, 그것이 당대 한국 사회 전체가 짊어졌던 ‘구조적 범죄’였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변호인 송우석의 분노는 커진다. 단순히 진우를 변호하는 것이 아닌, 고문의 구조와 이를 덮으려는 공권력 전체를 상대로 맞서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법이란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정의는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것임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법정에 선 진실, 변호의 의미
『변호인』의 마지막 법정 장면은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뜨겁고 의미 깊은 장면 중 하나다. 송우석은 공안검사들과 대립하며, 법정이라는 무대 위에서 ‘진실’을 외친다. 법이 단지 체제를 위한 도구가 될 수 없고, 정의는 권력의 판단이 아니라 인간의 양심에서 비롯된다는 그의 외침은 단순한 변론이 아닌 시대에 대한 선고다. 그는 단순히 피고인 진우의 무죄를 주장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지금 우리가 처한 사회가 얼마나 비정상적인가”를 법정에서 고발한다. 그 발언은 재판정 안에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영화를 보는 관객의 심장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법정에서 울리는 그의 목소리는 법조인의 말이 아니라, 한 인간의 절규다. 이 장면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실화를 재현한 것이지만, 단순한 재연 그 이상이다. 이는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며, 법이라는 제도가 언제든 무기로 변할 수 있다는 경고다. 영화는 결국 묻는다. 법이 지켜야 할 건 체제인가, 사람인가? 송강호의 연기는 이 장면에서 폭발적인 감정과 함께 극도의 절제를 동시에 보여준다. 그는 외치지만, 그 목소리에는 분노와 슬픔, 그리고 절박함이 뒤섞여 있다. 이는 『변호인』이 단지 ‘좋은 영화’를 넘어서, ‘의미 있는 영화’로 기억되는 이유다. 『변호인』은 법정에서 시작해, 양심으로 끝나는 영화다. 그리고 이 영화는 말한다. 그때도 진실을 외친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