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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놈 (Venom, 2018) – 공생, 정체성, 정의의 경계

by 댕디 2025. 4. 30.

베놈 (Venom, 2018)

《베놈》은 마블 세계관 내에서 ‘스파이더맨의 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캐릭터를 단독 주연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기존 히어로 서사와는 전혀 다른, 다소 음울하고 이질적인 분위기 속에서 톰 하디는 인간과 외계 생명체가 공존하는 ‘공생체’의 내적 갈등을 강렬하게 연기한다. 이 영화는 선악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세계에서, 자기 안의 괴물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어떤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공생이라는 진화의 형태

《베놈》의 가장 큰 주제는 ‘공생(Symbiosis)’이다. 이는 단순히 외계 생명체가 인간에게 기생한다는 의미를 넘어, 완전히 다른 두 존재가 서로를 받아들이며 하나의 개체로 진화해가는 과정을 상징한다. 에디 브록은 경쾌하고 집요한 탐사 기자로, 진실을 밝히는 데 열정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라이트 재단의 음모를 파헤치다 일자리를 잃고 연인까지 떠나보내며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때 외계 심비오트 ‘베놈’이 그의 몸에 기생하게 되면서, 전혀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베놈은 처음에는 위협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존재로 묘사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에디와는 독특한 케미스트리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고, 결국 공생을 통해 더욱 강력한 존재로 거듭난다. 이는 단순한 초능력 영화의 설정이 아니라, 자아 내부의 모순된 욕망—폭력성과 정의감—을 통합해가는 내면적 성장의 은유로도 읽힌다. 《베놈》은 이처럼 육체적 공생을 통해 정신적 통합과 인간적 진화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독특한 작품이다.

괴물인가 인간인가, 정체성의 충돌

《베놈》에서 에디 브록은 끊임없이 자신이 괴물인지, 인간인지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그는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하지만, 베놈과 결합한 이후 점차 자신의 감정과 본성이 심비오트에 의해 흔들리는 것을 경험한다. 영화는 이 정체성의 충돌을 피상적으로 다루지 않고, 몸과 마음, 의지와 본능의 충돌로 깊이 있게 그려낸다. 베놈은 때때로 인간성을 위협하는 존재로 작용하지만, 동시에 에디가 두려움이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게 만드는 무기이기도 하다. 결국 에디는 베놈을 통해 자신이 이전까지 외면해왔던 내면의 욕망, 분노, 고통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자아의 통합을 향한 여정으로,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에디는 더 이상 베놈을 단순한 기생체로 보지 않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심지어 둘 사이에는 일종의 우정, 혹은 연대감이 형성되며 관객에게 인간과 괴물의 경계가 어디쯤에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베놈》은 정체성이라는 주제를 통해 내 안의 이질적인 존재를 억누르기보다 인정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길을 제시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안티히어로의 출현

《베놈》은 정의의 개념을 전통적인 히어로 영화와는 다르게 다룬다. 에디와 베놈은 범죄자들을 처단하면서도, 법이나 도덕이라는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 그들은 명백한 정의의 기준 없이도 ‘악한 자를 응징한다’는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한다. 이러한 행위는 안티히어로적 요소를 강화하며, 관객들에게 불편함과 동시에 쾌감을 안긴다. 베놈은 폭력적이고 파괴적이지만, 결국에는 더 큰 악을 막는 존재로 기능한다. 이러한 모순된 정의 실현 방식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기존 MCU나 DC 히어로들이 보여준 선악 구도에서 벗어난 새로운 흐름을 제시한다. 또한, 베놈과 에디는 절대적인 히어로가 아니라, 실수하고 갈등하며 변화를 겪는 존재라는 점에서 보다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캐릭터로 다가온다. 《베놈》은 완벽하지 않아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지키고자 하는 존재도 영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현대적 안티히어로 서사의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