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략한 줄거리
『배트맨 리턴즈 (Batman Returns, 1992)』는 팀 버튼 감독이 전작의 성공에 이어 다시 연출을 맡은 두 번째 배트맨 실사 영화로, 한층 더 어두운 분위기와 상징적인 캐릭터로 가득한 고담시를 무대로 한다. 유기된 기형아로 자란 펭귄맨이 지하 세계에서 등장하고, 억눌린 삶을 살던 셀리나 카일이 ‘캣우먼’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 두 인물과 배트맨이 얽히며 고담은 다시금 광기와 욕망이 충돌하는 심연으로 빠져든다.
고담의 심연, 괴물들의 도시
『배트맨 리턴즈』는 전작보다 훨씬 더 고딕적이고 음침한 도시로 고담을 재구성한다. 팀 버튼은 이 도시를 단지 배경이 아닌, 캐릭터 자체처럼 다루며, 도시의 모양새는 사람들의 내면을 반영하는 또 하나의 무대가 된다.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환상과 불안, 기괴함과 슬픔이 뒤섞인 독특한 감정을 형성하며, 고담은 눈 내리는 겨울임에도 따뜻함보다는 냉기와 고독으로 가득하다. 이 도시는 아름다움과 혐오, 권력과 광기가 뒤엉킨 공간이다. 억압된 자들이 변형되고, 괴물처럼 등장하며, 표면 아래에는 부패한 권력이 암암리에 작동하고 있다. 펭귄이 자라난 하수구, 셀리나가 추락한 외로운 아파트, 그리고 위선적인 부호 맥스 슈렉의 탑까지, 고담의 구조물 하나하나가 인간 내면의 상처와 탐욕을 형상화한다. 팀 버튼은 이 영화를 통해 '고담'이라는 도시에 ‘사회적 괴물’을 키워낸 배경을 설명한다. 이는 단지 배트맨이 악당을 물리치는 이야기보다 훨씬 복잡하고 섬세하다. 악당은 외부에서 온 존재가 아니라, 고담이라는 도시가 만들어낸 자식이다. 이는 배트맨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고담의 상실과 죄의식이 만든 또 하나의 괴물이기 때문이다. 『배트맨 리턴즈』는 고담을 도시가 아니라 상징적 공간으로 다룬다. 이는 영화 전체에 '심연'의 개념을 부여하며, 그 속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은 단지 슈퍼히어로나 빌런이 아닌, 사회로부터 추락한 비극적 존재들로 다시 태어난다.
캣우먼과 배트맨, 이중적 정체성의 공명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캐릭터는 단연 ‘캣우먼’이다. 미셸 파이퍼가 연기한 셀리나 카일은 억눌린 비서에서 욕망과 고통이 응축된 존재로 재탄생하며, 배트맨과 가장 닮은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는 억압당한 여성의 분노, 외면당한 인간의 절규, 그리고 자유에 대한 욕망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셀리나의 변신은 마치 죽음 이후의 부활처럼 연출되며, 흰 고양이들이 둘러싼 장면은 환상적이면서도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캣우먼은 히어로도 빌런도 아니다. 그녀는 고담이라는 도시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상처받은 자’이며, 본능과 이성, 복수와 사랑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그녀와 배트맨의 관계는 로맨스라기보다 ‘내면의 이중성’에 대한 공명이다. 브루스 웨인이 낮에는 억제된 신사, 밤에는 배트맨이듯, 셀리나 역시 이중적인 삶을 산다. 이 둘은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며 끌리지만, 동시에 그들은 함께할 수 없는 운명임을 알고 있다. 캣우먼은 “나는 날 수 있지만, 집착하지는 않아”라고 말하며, 결국 고담을 떠난다. 이는 사랑의 거부가 아니라, 자유와 자아의 선택이다. 배트맨은 법의 틀 안에서 질서를 추구하지만, 캣우먼은 그 틀을 거부하며 혼돈 속에서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기를 택한다.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사랑이 아닌, 서로의 그림자를 마주하는 과정이다. 팀 버튼은 이를 통해 히어로와 빌런, 남성과 여성, 질서와 자유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해체하며, 정체성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욕망의 그림자, 펭귄의 비극
오스왈드 코블팟, 일명 ‘펭귄’은 이 영화에서 가장 비극적인 캐릭터다. 기형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부모에게 버려지고, 하수구에서 자라나 괴물로 성장한 그는 단순한 악당이 아니다. 그는 고담이 만들어낸 ‘사회적 유기물’이며,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과 복수심이 뒤엉킨 인물이다. 그의 외모는 관객에게 혐오감을 주지만, 그 내면은 오히려 인간적 연민을 자아낸다. 펭귄은 자신이 빼앗긴 사회적 지위를 되찾고자 한다. 그는 정치인으로 만들어져 시장 선거에 나서며, 상류 사회에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 과정은 철저히 조작되고, 결국 그는 다시 괴물로 몰락한다. 이 과정은 ‘인간이 아닌 자가 인간 세계에서 자리를 찾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가 끝내 파멸에 이르는 장면은 인간 사회의 배척과 위선의 단면을 드러낸다. 펭귄은 배트맨과 직접적인 대립 관계이면서도, 마치 그의 또 다른 모습처럼 비쳐진다. 그 역시 고담에서 태어났고, 부모로부터 상처받았으며, 정의가 아닌 복수로 세상에 대응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는 복수를 선택하고, 배트맨은 통제를 선택했다. 이 미묘한 차이는 둘의 결말을 갈라놓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펭귄이 죽음을 맞이하고, 그 시체가 펭귄 무리에게 수장되는 장면은 장엄하면서도 슬프다. 팀 버튼은 이 장면에서 그를 더 이상 괴물이 아닌, ‘죽은 아이’로 묘사하며, 관객의 정서를 뒤흔든다. 『배트맨 리턴즈』는 단순한 히어로 영화가 아닌, 사회적 소외와 인간성의 그림자를 비추는 서정적 비극으로 자리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