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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브 스틸 (Man of Steel, 2013) – 기원, 충돌, 선택

by 댕디 2025. 5. 2.

맨 오브 스틸 (Man of Steel, 2013)

간략한 줄거리

『맨 오브 스틸 (Man of Steel, 2013)』는 DC 확장 유니버스(DCEU)의 첫 번째 작품으로, 슈퍼맨의 기원을 새롭게 그려낸 리부트 영화다. 크립톤 행성의 멸망과 함께 지구로 보내진 칼엘은, 인간으로서의 삶과 외계 존재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을 겪으며 성장한다. 한편 과거 크립톤 군사 지도자였던 조드 장군이 지구에 도착하면서, 그의 존재는 전 인류와의 충돌을 불러오게 되고, 슈퍼맨은 처음으로 ‘영웅으로서의 선택’을 해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된다.

새로운 기원의 재구성

『맨 오브 스틸』은 기존 슈퍼맨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리부트 작품으로, 크립톤의 몰락과 칼엘의 지구 도착을 훨씬 더 과학적이고 정치적인 서사로 풀어간다. 리처드 도너의 1978년 작품이 신화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였다면, 잭 스나이더 감독은 이를 더욱 리얼하고 묵직한 현실 세계로 끌어왔다. 크립톤은 유전공학과 독재 체제에 의해 멸망에 이른 고도 문명이었으며, 칼엘은 자연 분만된 유일한 존재로 그려진다. 이는 그가 ‘선택’의 자유를 지닌 유일한 존재라는 상징이기도 하다. 지구에서 성장한 클락 켄트는 양아버지 조너선 켄트의 보호 아래 자신의 능력을 숨기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 선택은 단지 안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두려움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전략적 침묵이었다. 조너선은 클락에게 "언젠가 너는 선택해야 할 거야. 너의 모습이 세상을 바꿀 수도, 세상을 무너뜨릴 수도 있어."라고 말한다. 이 대사는 영화 전체의 윤리적 프레임을 결정짓는 핵심이다. 기존의 ‘정체성 발견’ 스토리와 달리, 『맨 오브 스틸』은 슈퍼맨이 자신의 정체성을 조각조각 모아가는 과정을 플래시백과 병렬 구조로 풀어간다. 그는 각지에서 다양한 일을 하며 사람들을 구하면서도 이름도, 정체도 숨긴 채 살아간다. 이는 단순한 신분 숨기기가 아닌,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한 여정이며, 마치 인간 청년이 자아를 탐색하는 성장기처럼 다뤄진다. 이 작품은 영웅의 탄생을 영광이 아닌, 고통과 고뇌 속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로 제시한다. 이는 이후 DCEU 전반에 걸쳐 전개될 ‘비극적 영웅서사’의 시작을 선언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조드 장군과 정체성의 충돌

『맨 오브 스틸』의 중심 갈등은 슈퍼맨과 조드 장군 사이의 충돌이다. 조드는 크립톤의 군사 지도자이자, 민족 보존을 사명으로 여긴 극단적 이념주의자다. 그는 칼엘을 단지 '동족'으로 보지 않고, 크립톤 재건의 열쇠로 판단하며 강제로 동조시키려 한다. 이 둘의 충돌은 단순한 선악 대결이 아닌, '목적과 존재 방식의 충돌'이다. 조드는 태어날 때부터 군인으로 설계되었고, 칼엘은 자유로운 선택을 허용받은 유일한 존재다. 조드의 주장에는 일정한 논리성과 설득력이 존재한다. 그 역시 고향을 잃은 존재이며, 자신의 방식으로 종족의 생존을 꾀하고자 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수단은 지구의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슈퍼맨은 ‘정체성의 충돌’을 겪게 된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를 강제로 선택당할 위기에 처한다. 조드는 물리적 적이지만 동시에 ‘내 안의 크립톤’을 대변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영화 후반, 두 사람의 전투는 이전 어떤 슈퍼히어로 영화보다도 파괴적이고 감정적으로 과열된 양상을 띤다. 메트로폴리스를 거의 전멸시키는 이 전투 장면은 비주얼만큼이나 도덕적 딜레마를 동반한다. 조드의 마지막 공격에서 슈퍼맨은 결국 그를 목 졸라 죽이게 되는데, 이 장면은 DCEU 팬덤 내에서 지금까지도 가장 논란이 많은 장면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 결정은 슈퍼맨이라는 존재가 단순히 '모든 생명을 구하는 절대 선'이 아니라, 때로는 무거운 선택과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그는 단지 지구를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존재로 살 것인가'를 선택한 것이다.

인간인가 신인가, 슈퍼맨의 선택

『맨 오브 스틸』은 클락 켄트가 ‘인간으로 살아가기로 선택하는 과정’을 가장 비극적으로, 그러나 주체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그는 물리적으로는 신에 가까운 존재이지만, 자신을 인간으로 규정한다. 이는 단순히 지구에서 자랐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들의 ‘연약함’ 속에서 자신이 보호하고 싶은 가치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슈퍼맨을 무조건 선한 구원자가 아닌, ‘선택하는 존재’로 묘사한다. 그는 힘을 갖고 있지만, 그 힘을 언제 어떻게 써야 하는지 늘 고민한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생명을 잃는 것을 누구보다 슬퍼한다. 이런 슈퍼맨의 모습은 단지 초인이 아닌 ‘인간적인 영웅’이라는 테마로 연결되며,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잭 스나이더는 비주얼적 과시보다는 슈퍼맨의 고뇌와 진화에 집중한다. 그는 중력을 거스르며 첫 비행을 할 때도 두려움을 동반하고, 강력한 힘을 쓸 때마다 자기 검열을 한다. 이러한 접근은 기존의 히어로물과 차별화되는 ‘신화의 인간화’를 시도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신이지만 스스로를 인간처럼 살아가도록 만든 존재이며,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궁극적인 주제다. 『맨 오브 스틸』은 그래서 단지 ‘영웅의 탄생기’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선택기’이며, 누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가가 아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인간답게 살 수 있는가를 묻는 영화다. 슈퍼맨은 그 질문 앞에서 자신이 무엇을 지켜야 할지를 알고 있었고, 그 선택이 그를 진정한 영웅으로 만든다.